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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6월 10일 생일인 6반 선우진을 기억합니다2019-06-10 13: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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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 되었습니다

 

 

1882번째 4월 16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었던 가슴아픈 아이의 생일입니다.

 

"순남아"
우진이가 가장 사랑했던 이름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식탁에 앉았을 때 "순남아" 학교를 가려고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서도 "순남아" 잠들기 전에도 "순남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엄마" 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두고 떠난 아들. 우진이.

 

 

우진이는 열살아래 여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 입니다.
여느집처럼 늦둥이 여동생을 보고 부모님과 행복해하던 시절,
우진이가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 아빠가 큰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은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아빠를 좋아했고 친했던 우진이는 그렇게 누워 있는 아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우진이도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엄마도 병원에서 일을 하며 아빠의 병수발을 들어야했습니다.
우진이의 본래이름은 재원이었으나 이시점에 엄마는 우진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였습니다.공교롭게도 우진이가 엄마를 "순남"이라고 부른 것도 이때부터 랍니다. 엄마의 버팀목을 자처하고 동생에게도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10살이나 어린 동생을 끔찍하게 돌봤습니다.
둘이서 수다를 떨고, 먹방사진을 찍고, 동생을 씻기고 하는 것도 우진이 몫이었습니다.
목욕할 때는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자주 틀었다고 합니다.
동생은 그 노래를 들으면 오빠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그렇게 엄마에게는 믿음직한 아들, 동생에게는 아빠같은 오빠가 됐습니다.

 

 

"순남아"
"너 왜 자꾸 엄마 이름 불러?"
"그럼 순남이를 순남이라고 부르지 남순이라고 불러?"
엄마와 의견대립이 있을때도 먼저 "순남아 미안해"하며 사과를 하고 능청스러운 아들로 돌아
오기도 했으며 엄마에게 손편지를 자주 쓰며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순남이는 오빠만 믿어"

 

우진이가 편지에 자주 남겼던 말입니다.
아빠가 가족곁을 떠난것은 우진이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몇달전 겨울이었습니다.
그때도 우진이는 엄마에게

 

 

"고생했어 순남아. 이제 오빠만 믿어. 울지 말고.."
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렇게 우진이는 집안의 기둥, 아니, 어린 동생과 힘들어 하는 엄마가 보호받고 쉴 수 있는그런 "집"이 되었습니다.

 

 

우진이의 꿈은
축구해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 었습니다.
태권도와 축구등을 잘했고 축구선수를 꿈꿨지만 엄마가 돈 되는 일을 하라고 반대하자 축구해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새벽에 유럽축구를 보면서 해드폰을 끼고 모니터 앞에 앉아 해설을 하곤 했습니다.
동생을 챙기는 와중에도 시간이 나면 축구를 했고, 축구경기를 봤고, 축구 해설을 했고, 축구 게임을 했습니다.

 

 

184cm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에 패션 감각도 뛰어나 인기도 많았던 우진이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에 동생에게 
"엄마 말 잘 듣고, 금요일까지만 기다리면 돼"라고 말했고 
"우진아, 안 가면 안 돼?"하며 붙잡는 엄마에게는 
"괜찮아. 갖다올게"라며 긴 손가락을 들어올려 까딱이며 고개를 숙이고 눈인사를 하고 수학여행은 떠났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기둥이자 집 이었던 우진이를 집어삼킨 세월호 참사.

 

우진이는 5월 5일 돌아왔습니다.
참사후 2주가 넘게 지났지만 예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학여행에 싸 간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차고 있던 시계도 그대로 였으며 흉터 자국도,피어싱 한 흔적도, 화상 자국도 모두 그대로 였습니다.
딱 한 가지. 입고 있는 속옷만이 우진이 것이 아니 었다고 합니다.
수소문 결과 15일밤 아이들은 서로 속옷을 바꿔 입으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엄마는 가끔 노래를 듣는답니다.
우진이가 한 소절 부르고 엄마가 또 따라 불렀던 노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친구님들
우진이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선우진을 기억하여 주십시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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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304명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는 편향적 판결,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한마디로 ‘국가 책임자들의 특조위 조사 방해는 유죄로 인정되나 경미한 범법 행위여서 실형 처벌은 하지 않는다’고 요약할 수 있다.

 

304명의 국민을 구하지 않고 심지어 퇴선을 막아 끝내 희생시킨 국가 책임자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재판부는 인지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재판장은 특조위의 조사를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조사’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판결로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살인을 전 국민이 목격한 범죄행위다. 청와대, 해경, 해수부를 비롯한 권력기관, 국가 정보기관들이 함께 저지른범죄였다.

 

이 범죄를 조사하는 국가의 독립적 조사 기구인 특조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 경제수석, 해수부 장차관이 조직적으로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특조위 조사는 ‘선박 사고 조사’가 아니라 ‘국가 범죄 조사’였다. 이에 대한 범죄 은닉, 증거 인멸, 방해 교사를 했는데 경미한 범법 행위라니 재판부는 304명의 죽음이 경미하다고 판단하는가!

 

만일, 이번 1심 판결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독립적 국가 조사기구에 대한 최고 권력자들의 방해 행위는 쉽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이번 1심 재판부는 최고 권력층이 직권을 남용해서라도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감춘 죄가 제대로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경미한 처벌에 그치게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재판부가 이러한 황당무계한 판결을 한 근거가 청와대와 해수부의 최고 권력자들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정권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었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의 존재 목적인 국민의 이익을 배반했다. 고위 공직자들의 자리보전 욕망때문에  304명 국민들의 살인 사건을 덮으려고 한 극악한 범죄행위였다.

 

재판부가 앞장서 이 범죄행위를 옹호하고 이후 국가 범죄에 대한 사실상의 합법화를 열어 놓았다.

 

즉, 재판부는 참사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남긴 이번 판결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다룬 판결이었는지 분간조차 못했던 것이다.

 

2014년 참사 직후부터 민관군 합동으로 세월호참사로 인한 희생이 국가에 의해 수장된 살인 범죄라는 것을 은폐했다. 그리고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이에 대한 수사도 가로 막아 아예 종결시켰다.

국가에 의한 살인 범죄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압수수색을 황교안과 내통한 우병우가 가로막았다.

이도 모자라 수사권조차 없이 조사만 할 수 있었던 특조위를 청와대와 해수부를 총동원하여 조사를 방해하고 심지어 새누리당까지 동원하여 강제 해산까지 시키게 했다. 이러한 특조위 조사 방해의 배경에 대해 재판부는 인식하지 못했다.

 

세월호참사라는 국가 범죄에 대한 조사, 수사가 단 한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충분한 재조사와 전면적인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5년이 지나도록 외치고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재판부는 무책임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책임자 처벌이 필요 없다는 것인가? 살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물론이고 ‘무지, 무능, 무책임, 잘못된 관행’에 대한 처벌을 반드시 하여 다시는 세월호참사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국민의 법감정에 대해 재판부는 전혀 모르는가?

우리는 사법 권력은 결코 적폐청산 의지가 없음으로 확인했다.

 

희생자들이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우기는

사법부의 강자 편들기 관행이 멈출 때까지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면적인 고소고발, 전면적인 법정 투쟁도 불사 할 것이며 재수사를 가로 막는 세력들을 끝까지 남김없이 심판할 것이다.

 

2019년 6월 27일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