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요 아이들의 생일
아이들의 생일
생일을 맞은 단원고 희생 학생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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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6월 12일 생일인 5반 서동진을 기억합니다2017-06-13 1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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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 되었습니다

 

 

1154번째 4월 16

  

(2017년 6월 12일 월요일)

♡ 2단 도시락 그리고 5단 도시락♡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서동진학생의 생일입니다

 

 

2015년 오늘,
동진이의 생일은 아이들 등교전인 8시 30분에 동진이가 공부하던 교실에서부터 한소녀와 어머니와 함께 시작했었습니다.
2016년 오늘,
이 소녀와 어머니, 그리고 친구님들과 함께 자정을 넘기는 순간에 분향소에서 동진이의 생일을 기억하여야만 했습니다.
2017년 오늘
이소녀의 어머니와 함께 분향소에서 동진이 생일을 기억합니다.

 

 

한 여학생과 어머니.
2015년, 2016년에 이어 올해에도 꼭 동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다던 이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녀는 동진이와 한동네에 살며 동진이를 친오빠처럼 따랐고 동진이도 친동생처럼 살갑게 챙겨주었습니다.
이 소녀는 지금 단원고 3학년에 재학중에 있습니다.

 

 

서동진, 
동진이는 187cm의 큰 키에도 키높이 신발을 신고 까무 잡잡한 얼굴에 하얀이가 드러나도록 웃는 아이 입니다. 온몸에 장난끼가 들러붙어 동진이 주변엔 늘 크고 작은 웃음이 흘러넘쳤습니다. 동진이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동영상에도 45도 기울어진 세월호 안에서 벽을 발판삼아 배를 들고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변친구들에게 두려움을 떨쳐내도록 장난기를 보어줍니다.

 

 

동진이는 외동아들입니다.
외가에서도 첫 손주 첫 조카였고 친가에서도 첫 손주 첫 조카여서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버스커버스커와 버즈의 노래처럼 밴드의 노래를 즐겨불렀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실용음악학원에 다니며 기타도 배우고 보컬수업도 들었습니다.

 

 

동진이의 꿈은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기타도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춤도 추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음악에 관한것들은 무엇이든 좋아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북을 쳤고
학교수업이 끝나면 두군데의 아르바이트를 거쳐 댄스학원과 보컬학원으로 직행할 정도로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리던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훨씬한 키에 장난기 많고 다정다감하며 또 어느때는 마음을 움직이는 위로를 건내고, 세심하게 주변사람들을 챙겼기에 동진이 주변에는 늘 웃음과 친구들이 넘쳐 났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2014년 4월 15일 아침,
동진이는 학교가는 길에
자신이 직접 만든 2단 도시락을 싸들고 
이 소녀의 집 앞에 찾아왔습니다
소녀는 동진이에게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럼 난, 5단 도시락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동진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4월 27일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동진이.
이 소녀와 어머니는 동진이 장례식이 치러진 고대병원 장례식장에 5단 도시락을 싸가며 눈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
장례식후,
동진이에게 이 소녀는 동네에 피어난 봄꽃을 꺾어 동진이집 우편함에 매일 놓아두는 것으로 동진이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안산 와동의 모든 봄꽃들이 이 소녀와 친구들의 마음으로 옮겨져 동진이네 우편함을 가득 채웠습니다.
소녀의 봄, 엄마의 봄, 안산의 봄은 슬픔의 봄으로, 꽃들은 슬픔을 담고 꽃 피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주변의 많은 이들과 한 소녀, 친구들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동진이는 지금은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민약 지하철에서 누가 울거든, 버스에서 벚꽃이 흩날리는 바깥을 내다보며 어깨를 들썩이거든 "울지마라 "는 말 대신에 휴지 한 장 건 넬 일이다.
좀더 속 깊은 사람이라면 손수건도 주지말고, 맘 놓고 울 수 있게 그저 눈길로 , 마음으로. 기도로 그의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겠지" 
소설가(신혜진 님 )

 

 

친구님들
동진이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서동진을 기억하여 주십시요.

 

 

동진이의 생일케잌은 소녀와 어머니의 주인공인 #이은진 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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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304명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는 편향적 판결,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한마디로 ‘국가 책임자들의 특조위 조사 방해는 유죄로 인정되나 경미한 범법 행위여서 실형 처벌은 하지 않는다’고 요약할 수 있다.

 

304명의 국민을 구하지 않고 심지어 퇴선을 막아 끝내 희생시킨 국가 책임자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재판부는 인지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재판장은 특조위의 조사를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조사’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판결로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살인을 전 국민이 목격한 범죄행위다. 청와대, 해경, 해수부를 비롯한 권력기관, 국가 정보기관들이 함께 저지른범죄였다.

 

이 범죄를 조사하는 국가의 독립적 조사 기구인 특조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 경제수석, 해수부 장차관이 조직적으로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특조위 조사는 ‘선박 사고 조사’가 아니라 ‘국가 범죄 조사’였다. 이에 대한 범죄 은닉, 증거 인멸, 방해 교사를 했는데 경미한 범법 행위라니 재판부는 304명의 죽음이 경미하다고 판단하는가!

 

만일, 이번 1심 판결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독립적 국가 조사기구에 대한 최고 권력자들의 방해 행위는 쉽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이번 1심 재판부는 최고 권력층이 직권을 남용해서라도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감춘 죄가 제대로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경미한 처벌에 그치게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재판부가 이러한 황당무계한 판결을 한 근거가 청와대와 해수부의 최고 권력자들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정권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었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의 존재 목적인 국민의 이익을 배반했다. 고위 공직자들의 자리보전 욕망때문에  304명 국민들의 살인 사건을 덮으려고 한 극악한 범죄행위였다.

 

재판부가 앞장서 이 범죄행위를 옹호하고 이후 국가 범죄에 대한 사실상의 합법화를 열어 놓았다.

 

즉, 재판부는 참사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남긴 이번 판결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다룬 판결이었는지 분간조차 못했던 것이다.

 

2014년 참사 직후부터 민관군 합동으로 세월호참사로 인한 희생이 국가에 의해 수장된 살인 범죄라는 것을 은폐했다. 그리고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이에 대한 수사도 가로 막아 아예 종결시켰다.

국가에 의한 살인 범죄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압수수색을 황교안과 내통한 우병우가 가로막았다.

이도 모자라 수사권조차 없이 조사만 할 수 있었던 특조위를 청와대와 해수부를 총동원하여 조사를 방해하고 심지어 새누리당까지 동원하여 강제 해산까지 시키게 했다. 이러한 특조위 조사 방해의 배경에 대해 재판부는 인식하지 못했다.

 

세월호참사라는 국가 범죄에 대한 조사, 수사가 단 한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충분한 재조사와 전면적인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5년이 지나도록 외치고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재판부는 무책임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책임자 처벌이 필요 없다는 것인가? 살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물론이고 ‘무지, 무능, 무책임, 잘못된 관행’에 대한 처벌을 반드시 하여 다시는 세월호참사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국민의 법감정에 대해 재판부는 전혀 모르는가?

우리는 사법 권력은 결코 적폐청산 의지가 없음으로 확인했다.

 

희생자들이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우기는

사법부의 강자 편들기 관행이 멈출 때까지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면적인 고소고발, 전면적인 법정 투쟁도 불사 할 것이며 재수사를 가로 막는 세력들을 끝까지 남김없이 심판할 것이다.

 

2019년 6월 27일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