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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맞은 단원고 희생 학생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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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6월 3일 생일인 6반 김승혁을 기억합니다2019-06-03 1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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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 되었습니다

 

 

1875번째 4월 16
(2019년 6월 3일 월요일)

 

250명의 단원고학생이 희생된 세월호참사의 이면에는 여러가지의 인연들이 존재합니다.
단원고에는 여러명의 쌍둥이 형제 자매들이 있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둘이 같이 희생된 경우는 없습니다.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6반 #김승혁학생의 생일입니다.

 

승혁이는 위로 3살 많은 큰형과 쌍둥이 작은형이 있는 삼형제중에 막내입니다.

 

승혁이는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표정과 머리모습 입는 옷까지 똑같았고 특히 살짝 눈웃음을 치면서 웃는 얼굴은 두 아이가 거울로 반사되는 모습같이 선한 표정의 승혁이였다고 합니다.

 

 

세월호참사시
다행히도 17년을 같이 자라 온 쌍둥이 작은 형은 다른학교에 재학중이여서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큰형을 좋아해서 잘 따랐고, 쌍둥이 작은형과는 친구처럼 붙어 지냈다합니다.
집안에 남자가 많아도 막내들은 조금은 여성스럽고 애교가 많은 듯 합니다.
승혁이도 마찬기지 였습니다.
엄마를 위해 커피를 타 주고 장바구니를 들어주고 직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께 발마사지를 해주던 애교덩어리였습니다.

 

 

"우리는 빵이고 넌 잼이야"
엄마 아빠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가운데로 쏘옥 기어들어온 승혁이에게 빵과 빵사이의 잼처럼 중간에 끼인 승혁이를 밀어부치며 한 말입니다.
그러면 승혁이도 비명을 지르는척 하기도 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곤 했다고합니다.

 

승혁이는 어렸을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화가를 꿈꿨으나 고민끝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실내 건축디자이너가 되고자 했습니다.

승혁이네는 아빠,엄마, 세아들. 그리고 근처에 사시는 할이버지까지 모두 여섯 식구였으나 큰 형이 2014년 2월에 군입대하였고 할아버지가 2014년 3월에 세상을 떠났으며 승혁이 마저 2014년 4월16일 세월호에 탑승했다 돌아오지 못해 지금은 세식구만 남겨졌습니다.

 

승혁이는 할아버지의 49재인 4월23일에 돌이왔고, 자신의 생일과 작은 형의 생일날인 6월 3일에 49재 의식을 치러야했습니다.
18살에 사랑하는 동생과 뜻밖의 이별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작은 형 쭈니(집에서의 애칭),
항상 같이 입던 옷을 
"미안해서 못 입겠다. 그냥 미안해" 하는 작은 형 쭈니의 마음,
군대에서도 동생과 집안이 걱정되어 날마다 전화하는 큰 형,
남은 두 형제를 위해서도 꿋꿋히 이겨 내겠다는 엄마의 마음을 안고 승혁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승혁이의 봉안함에는 단란했던 가족사진 한 장이 붙어져 있습니다.

 

 

"승혁이는 영원한 내 아들이야. 가슴속에 묻은 아들이지. 이놈이 예전에는 꿈속에도 자주 나타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통 나타나질 않아.
그래도 나타나줬으면 좋겠어. 보고 싶으니까....
부모로서 고민이 많아. 지워야 한다는 건 너무 슬픈일이야...나한테"

 

승혁이의 짝꿍은 #신호성입니다.

 

억겹의 인연
시 신호현

 

 

인연 없다고 말하지 말아요
떠났다가 생일날에 돌아오고
할아버지 49재 다시 돌아오고

 

 

죽어서도 세상을 보고
식구된 도리 할 줄 알아요
날 떠났다고 말하지 말아요

 

 

내 가족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족이 날 잊을 뿐이예요
보지 못한다 잊지 말아요

 

 

빵사이 쨈 없으면
무슨 맛으로 먹을까마는
외로운 쭈니 꽉끼어 먹어요

 

 

엄마 아빠 사이에서
그림자 친구 쌍둥이 쭈니형
자상했던 큰 헝 행복했어요

 

 

억겹의 인연으로 만나서
천만 번의 슬픔으로 떠나지만
다시 가족으로 돌아올게요

 

 

친구님들
승혁이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김승혁을 기억하여 주십시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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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304명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는 편향적 판결,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한마디로 ‘국가 책임자들의 특조위 조사 방해는 유죄로 인정되나 경미한 범법 행위여서 실형 처벌은 하지 않는다’고 요약할 수 있다.

 

304명의 국민을 구하지 않고 심지어 퇴선을 막아 끝내 희생시킨 국가 책임자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재판부는 인지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재판장은 특조위의 조사를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조사’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판결로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살인을 전 국민이 목격한 범죄행위다. 청와대, 해경, 해수부를 비롯한 권력기관, 국가 정보기관들이 함께 저지른범죄였다.

 

이 범죄를 조사하는 국가의 독립적 조사 기구인 특조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 경제수석, 해수부 장차관이 조직적으로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특조위 조사는 ‘선박 사고 조사’가 아니라 ‘국가 범죄 조사’였다. 이에 대한 범죄 은닉, 증거 인멸, 방해 교사를 했는데 경미한 범법 행위라니 재판부는 304명의 죽음이 경미하다고 판단하는가!

 

만일, 이번 1심 판결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독립적 국가 조사기구에 대한 최고 권력자들의 방해 행위는 쉽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이번 1심 재판부는 최고 권력층이 직권을 남용해서라도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감춘 죄가 제대로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경미한 처벌에 그치게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재판부가 이러한 황당무계한 판결을 한 근거가 청와대와 해수부의 최고 권력자들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정권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었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의 존재 목적인 국민의 이익을 배반했다. 고위 공직자들의 자리보전 욕망때문에  304명 국민들의 살인 사건을 덮으려고 한 극악한 범죄행위였다.

 

재판부가 앞장서 이 범죄행위를 옹호하고 이후 국가 범죄에 대한 사실상의 합법화를 열어 놓았다.

 

즉, 재판부는 참사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남긴 이번 판결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다룬 판결이었는지 분간조차 못했던 것이다.

 

2014년 참사 직후부터 민관군 합동으로 세월호참사로 인한 희생이 국가에 의해 수장된 살인 범죄라는 것을 은폐했다. 그리고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이에 대한 수사도 가로 막아 아예 종결시켰다.

국가에 의한 살인 범죄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압수수색을 황교안과 내통한 우병우가 가로막았다.

이도 모자라 수사권조차 없이 조사만 할 수 있었던 특조위를 청와대와 해수부를 총동원하여 조사를 방해하고 심지어 새누리당까지 동원하여 강제 해산까지 시키게 했다. 이러한 특조위 조사 방해의 배경에 대해 재판부는 인식하지 못했다.

 

세월호참사라는 국가 범죄에 대한 조사, 수사가 단 한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충분한 재조사와 전면적인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5년이 지나도록 외치고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재판부는 무책임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책임자 처벌이 필요 없다는 것인가? 살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물론이고 ‘무지, 무능, 무책임, 잘못된 관행’에 대한 처벌을 반드시 하여 다시는 세월호참사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국민의 법감정에 대해 재판부는 전혀 모르는가?

우리는 사법 권력은 결코 적폐청산 의지가 없음으로 확인했다.

 

희생자들이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우기는

사법부의 강자 편들기 관행이 멈출 때까지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면적인 고소고발, 전면적인 법정 투쟁도 불사 할 것이며 재수사를 가로 막는 세력들을 끝까지 남김없이 심판할 것이다.

 

2019년 6월 27일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