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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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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시민위원이 되어주세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함께 했던
모두의 마음을 다시 모아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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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약속·책임”

안전사회를 향해 손 맞잡고!
끝까지 함께, 반드시 진실!

“얘들아 잘 있니?”

그날,
우리 아이들과 했던 약속을
엄마 아빠는 기억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 입니다

“세월호 이후는
달라져야 합니다"

반복되는 참사를 멈추게 하는 길은,
처벌되지 않는 책임의 역사를 청산하는 것 입니다

알립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알려드립니다

아이들 생일

  •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박육근 선생님을 기억합니다.3668번째 4월 16일 2024년 5월 1일(음력 3월 23일) 수요일 오늘이 생신이신 박육근 선생님을 잊지않고 기억합니다.   
    4.16가족협의회 04-29
  • 3675번째 4월 16일 2024년 5월 8일 수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6반 서재능 학생의 생일입니다.   외동아들 재능이는 생일을 하루 앞둔 어제 엄마의 꿈속에 찾아왔습니다.5~6세때의 모습으로 찾아온 재능이를 엄마는 볼을 비비고 쓰다듬으며 품에 안았습니다.   "서재능 . 난 최고의 외교관이 될거야"   재능이의 어릴적 꿈은공부보다는 친구들을 웃기는 데에만 관심 있었던 개그맨이 되는 것이 꿈일 정도로 주변의 친구들을 웃겼고 친구들도 재능이 이름을 빗대어 재능이를 "재능교육"이라 부르며 놀리곤 했다고 합니다.   단원고에 진학하며"한국외대에 진학하여 스페인어과를 들어가고 영어와 체코어를공부하여 최고의 외교관이 되는것"이 재능이의 꿈 이었습니다.우리동네 첫 외교관, 우리집안의 첫 외교관, 우리학교의 첫 외교관 그리고 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첫 외교관이 되고 싶었습니다.외교관의 꿈을 갖고 있으면서 매일 운동도 시작하게 된 건 남윤철 담임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끈기 있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받쳐줄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노력도 할 수 없다."하루에 줄넘기 천개를 하고, 아령을 들고 근육을 만들고, 팔굽혀 펴기를 하고, 아침마다 반바지를 입고 옥상에 올라 옥상의 눈을 쓸고, 키 182cm를 190cm까지 키우고 싶어했습니다.     엄마가 남들 다 입는 유명 아웃도어 점퍼를 사준다고 해도"엄마, 전 그런 옷 필요 없어요. 너무 비싼데다가 나만의 개성도 없잖아요. 생각해 보면 남들 따라서 옷 입는 것처럼 줏대없는 행동도 없는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철든 재능이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일 때문에 늦게오는 날이면 스스로 밥을 차려먹고설거지에 정리정돈까지 말끔하게 해 놓는 대견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재능이는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여름방학에는 외교관이 되려면 꼭 가보고 싶었던유럽여행을 가족과 함께 가려고 했습니다.하지만 재능이의 꿈은 수학여행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재능아 오늘 너 생일이라 너무 미안하다 너와 할 일이 많아,추억 만들일도 많고갈 곳도 많고 해주고 싶은것도 많은데네가 너무 일찍 아주 멀리 가버렸어.사랑하고 또 사랑한다.우리 아들 하늘 나라에서 친구들과멋진 생일 파티 하길바래.사랑해우리 멋진아들. 착한아들, 예쁜 아들...ㅡ엄마가ㅡ ☆   엄마의 생일 편지 글처럼 재능이는 멋지고착하고 예쁜 아들이였습니다.또한재능이는 엄마에게 전부였고,산 같은 존재였으며 엔돌핀 이였습니다.   어느날 오후아빠의 꿈에 나타난재능이는 방에서 팬티차림으로 뛰어나와 거실을 뱅글 뱅글 돌고 있어서 어지럽다고 그만하라고 소리질렀답니다.평소처럼 팬티만 입고 집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큰 거울 앞에 서서 몸매를 거울에 비춰보며 여러가지 동작을 하며 폼잡던 어린애 같은 천진 난만한 모습으로,호탕하게 웃는 모습으로 나타났다합니다.   살아생전의 그모습 그대로 아빠의 꿈에 다녀간 재능이는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05-09
  • 3674번째 4월 16일 2024년 5월 7일 화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10반 이경민 학생의 생일입니다. 반달 눈에 선한 미소를 지닌 아이가 분향소 안 영정 속에 있습니다.   ☆갱아,거기에선 아프지 말고 건강히 있어줘나중에 꼭 만나자 언니가 만나러갈께사랑해 내동생 ☆   오늘은 집에서 "갱갱이"로 학교에서는 "굥민"이로 불리던 경민이   경민이는 3자매의 막내입니다.큰언니와는 띠동갑, 12살 차이가 날 정도로 늦둥이 귀염둥이였죠,집안에서는 리더십있고, 똑똑하고, 고민도 서로 나누는 자매였으며, 때론 삶의 방향도 재시해주는 어른같은 믿음직한 동생이였다고 합니다.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많다보니 경민이네 큰언니와 둘째언니 모두 결혼을 하여 조카가 셋입니다.   세 조카 중에서도 이제 다섯살 된 큰조카는 경민이가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계속 돌봐쥐서 거의 경민이가 키우다시피 했다고 하네요.큰 조카는 경민이 이모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갱이모"라고 불렀답니다.큰조카는 경민이가 학교에서 끝나면 돌봐주러 오던 것을 기억하며참사후 1년여 동안 저녁마다 창문을 열어놓고."갱이모 보고싶다~!.""갱이모 빨리와~!"....라며 창밖으로 외쳤디고 합니다.   "굥민"이는 학교에선춤도 잘추고 수다떨기를 좋아하고친구들의 고민상담을 잘들어 주는 친구였습니다.10반 2분단 맨 앞자리가 경민이 자리입니다.선생님과 바로 앞에서 눈 마주쳤을 경민이와 친구들은아직도 그날,제자들의 마지막 일들을 증언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생존해 오신 담임선생님의 싸늘한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엄마의 꿈에도아픈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경민이는 2014년 4월16일 기우는 세월호 안에서 다리를 다쳤습니다.생존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큰 객실안에 경민이와 친구 다섯명이 마지막에 남았을때에도 경민이는 울지 않았습니다.자기가 울면 다른 친구들도 울기 시작하고 그러면 모두 무서워 할태니까요.그러나 누군가 울기 시작했고,그러자 경민이도 목 놓아 통곡을 하였다합니다.이 친구들과 단원고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구조대가 오기만을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까요,그것이경민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통곡하며 어른들이 구조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다림의 모습...그러나......끝내 "가만히 기다리라"며 방송하던 짐승들은 쥐새끼처럼 빠져나갔고구조대는 오지않았습니다.경민이와 친구들 250명, 선생님과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304명의 영혼들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끔찍히 조카들을 사랑했던 경민이....경민이의 셋째 조카는 경민이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몇일전에 태어났습니다.귀엽고 사랑스런 조카의 모습을 눈에 담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민이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조카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습니다.   "갱갱이" "굥민" 아이돌그룹"EXO"를 좋아했던 경민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05-07
  • 3672번째 4월 16일 2024년 5월 5일 일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6반 홍종영 학생의 생일입니다.   불과 몇 분 차이로 장남이 되고 막내가 되고..247번 번호표를 달고 3년 전 5월 4일 세월호에서 올라왔던 종영이는 쌍둥이 형제 중에 형입니다. 종영이는작은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과 책임감이 강하고 반에서 서기 역활을 맡을 정도로 빈틈이 없는 아이였습니다.또한 모든 학우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라도 불공평하게 대하는 적도 없었습니다.쌍둥이 동생과는 중학교때까지는 함께 같은 학교에 다녔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서로의 독립을 위해서도 잘 된일이라며 다른 학교로 배정된 것을 다행이라 여겼습니다.불행중 다행으로 동생은 이웃 "ㄱ" 고에 재학중에 화를 면했습니다. 종영이의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 였습니다.방안에 "홍종영의 주거권법"을 만들어 실천에 옮길 정도로 계획성있는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홍종영의 주거권법1조 (자유)1.나와 동생은 같은 이집의 주거자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2.나와 동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감싸준다.(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누리고자 할때 부모님과 동생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제한될 수 있다)는 부칙을 넣어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도 아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4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던 종영이는 성가대에서 솔로도 하며 주말에 가족과 함께 놀러가면 일요일에는 꼭 돌아와 교회에 나가던 아이였습니다.종영이의 학교 생활에서도 ClC활동을 열씸히 하기도 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 습니다.   종영이에게도 결코 때어 놓을 수 없는 친구가 한명 있습니다.선일중학교때부터 단짝처럼 붙어 다녔던 2반 허다윤 입니다.다윤이와는 함께 등교하고 집에 올때도 같이왔던 친구였습니다.생각이 깊고, 공부도 잘하고,자기주장이 뚜렸하고, 웃기도 잘 웃었던 종영이는 다윤이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지만 공부도 많이 가르쳐주었던 사이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다윤이네 집으로가 다윤이와 함께 다윤이 어머니차로 학교까지 이동했었습니다.종영이의 시신이 안산으로 돌아와 안치 되었을 때에는 옆자리를 다윤이가 안치될 수 있도록 비워달라 했습니다. 참사 100일째 되는 날 안산에서 국회까지 100리길을 걸어 국회 앞에 도착했을때"100일이 지났어도 달라진건 하나도 없다.본분마저 망각한 참 나쁜 사람들" 이라고 종영이 아버지 (홍원표님)은 정치권을 향해 외쳤습니다. 지지부진하던 세월호문제도 국민이 촛불을 들고서야 박근혜를 탄핵했고 3년이 다돼서야 세월호가 물 밖으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노래방에서도 찬송가를 부른다는 종영이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이 들어 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05-05
  • 3667번째 4월 16일 2024년 4월 30일 화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7반 곽수인 학생의 생일입니다.   "수인아 ~! 힘들게 10년 만에 왔었는데 꼭 다시 엄마에게 와주고다시 올때는 좀 더 일찍 와 줘~! 엄마가 더 많이 사랑해 줄께,미안해...."(분향소 생일 잔치 중 수인 어머니)   수인이는 부모님이 결혼 후 첫 아이를 잃고 10년 만에 귀하게 얻은 아이이고 집안의 장손이었습니다.수인이는 체중 4.8kg, 52cm 우량아로 태어났습니다.   "네가 힘을 키워서 잘못 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면 되잖아."   수인이는 초등학교때 (삼국지)를 셀 수 없을 만큼 여러번 읽었답니다.그중에서도 힘과 지혜를 갖춘 장비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습니다.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수인이는 한국사와 세계사 그리고 지리를 좋아했습니다. 역사책에 기록 되지 않은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불평등한 현실과 편견, 끝없이 반복되는 가진자들의 횡포 그리고 무엇보다 고쳐 쓸 수 없는 한국의 역사가 절망스러워 대학 졸업 후 다국적기업에 취직해서 평생 떠돌이로 살고 싶다는 수인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하신 말입니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던 수인이는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아침, 저녁으로 껴안아주며 허그 인사를 나누며 차츰 차츰 변했다합니다.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그날 그날 있었던 일들을 소소하게 터놓고 수다를 떨던 다정다감한 아이로 변했습니다.엄마에겐 친구 같은 존재였죠.단원고 1학년 1년 동안 엄마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평생 지난 17년 동안 나눈 이야기보다 많았다고 엄마는 말씀하십니다.   수인이는키 185cm에 농구 유도 골프 축구 야구 등 운동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습니다.(약한자는 관대하게 대하고 강한자와는 당당하게 맞서자) 수인의의 철학입니다.   수인이의 꿈은외국계기업에 취업하여 한국엔 들어오지 않고 실컷 해외를 구경하며 사는 것입니다.그러나수인이의 꿈은 설레임에 떠난 수학여행 중에 닥쳐온 비극적인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4월 20일에 가족품에 돌아와 23일에 꽃들이 만발한 수원연하장에서 화장 후에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이 들었습니다.   수인이가 가족 곁을 떠나는 날4월 23일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수인이 동생 ㅇㅇ은 오빠가 다니던 단원고에 진학하여 재학중에 있습니다.   고잔초. 단원중. 단원고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기억하는 수인이는 말 그대로 상남자였답니다학교에서는 과묵하고 감히 근접하기 어려운 분위기 있는 남자였다고 얘기합니다.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수인이는 집에 휴대폰을 충전기에 꼽아놓고 떠났습니다수인이의 마지막 음성은" 수학여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입니다.  
    4.16가족협의회 04-30
  • 3666번째 4월 16일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9반 고하영 학생의 생일 입니다. 하영이는두명의 오빠가 있는 삼남매의 막내입니다.맞벌이 하는 부모님이 출근하고 두 오빠가 등교하면 스스로 거실시계를 보고 유치원 차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다닐 정도로 당차고 똘똘했습니다.   하영이는 친구들과"비슷한 나이에 결혼해서 비슷하게 아이를 낳고 아이들을 친구 맺어주자"고 약속했습니다. 중2때는 밴드 보컬을 맡아 전교생 앞에서 마골피의 (비행소녀)를 부를 만큼 노래도 잘하고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들어주는 언니 같은 친구였습니다.   "보고싶은 하영아 엄마. 아빠는 이런 꿈을 꾼다. 우리가 나중에 늙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우리 딸은 17살의 예쁜 모습 그대로겠지 우리 곁을 떠난 날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겨 주겠지..."   하영이는책읽기를 좋아했고 공부도 잘했습니다.엄마는 딸이 늘 앉아서 공부했던 책상 만큼은 아직 치우지 못했습니다.   하영이의 꿈은국어를 좋아해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였습니다.또한 모든 딸이 그렇듯 엄마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였구요..   하영이를 기억하는 1학년 담임선생님의 기억속 하영이는 어떤 모습일까요. "꽃같이 어여쁘고 노~랑나비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아이, 또래보다 성숙한 인격.앞에서 끌고가는 리더쉽, 조용히 뒤에서 챙기는 배려심까지...정말 보기 드문 훌륭한 학생이였습니다.   학급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하영이 모습은 때론 언니같기도 하고 , 엄마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8과목 중 7과목이 1등급, 수리과학탐구 발표대회 최우수상,그 어렵다는 봉사상까지... 지상에서도 너무 아까웠던 하영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영이는15일 저녁 "아직 배가 출발하지 않고 있다"며 엄마와 통화한게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수학여행을 다녀오면 친구들과 함께 반지 맞추자며 반지에 새겨 넣을 문구를 뒤로한채하영이와 친구들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We alway exist around you"(우리는 항상 너의 주변에 있다) 4월25일 가족품에 돌아온 뒤 29일에 장례를 치렀는데 그날은 하영이 생일이였습니다.생일과 기일이 한날이 되어버린 하영이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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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시민위원이 되어주세요

다가오는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그날의 기억, 그날의 다짐, 그날의 약속을 다시 되새기고 진실과 정의, 안전한 사회를 향한 우리의 연대와 실천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잊지 않고 함께 행동하기로 했던 모두의 마음을 다시 모아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10주기 시민위원 신청하기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활동

우리는 진실을 밝히는 날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4월 16일은 매년 돌아옵니다.

봄날, 길가에 피어나는 꽃만 보아도 마음이 시립니다.
아이를 보고싶고 만지고싶어 꿈에라도 찾아와주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이기에 그날 희생의 무게만큼
책임자가 책임지게하기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별이 되버린 아이들이 꿈꾸던 삶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관계기관

안전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곳


  •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 안산사무실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685(초지동 666-2) 산업지원본부(옆) (우)15396
  • 서울사무실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45 임호빌딩 6층 (우)03127
  • 사업자등록번호 727-82-00042
  • 대표 김종기
  • 대표전화 031) 482-0416 (월~금: 오전 9시~오후 5시)
  • 팩스 031) 413-5380
  • 이메일 416family.org@gmail.com
  • ※ 세월호 팽목기억관 주소 (우)58945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길 101 팽목마을 ‘(가)세월호팽목기억관’
  • ※ 목포신항 주소 (우)58762 전남 목포시 신항로 294번길 45 세월호 목포신항만거치소
  • ※ 2014-0416 세월호 제주기억관 주소 (우)6331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300-2
  •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2014-0416 세월호 제주기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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